사용후 배터리를 다른 용도로 재사용하려는 사업자가 실제로 통과해야 하는 인증은 KC 62619가 아니다. 앞선 글 KC 62619 인증 개요와 사용후 배터리 적용 시 쟁점에서 짚었듯, KC 62619는 신품 산업용 리튬이차전지를 전제로 설계된 기준이라 사용후 배터리의 상태와 잘 맞물리지 않는 지점이 있었고, 정부는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별도의 안전성검사 체계를 마련했다. 그 세부 기준이 KC 10031이다. 이 글은 KC 10031이 무엇을 규율하는 제도인지, 검사 대상과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실제 검사가 어떤 절차로 진행되는지 정리하고, 재사용 사업자 입장에서 실무적으로 걸리는 지점을 짚는다.

제도 개요와 도입 배경

KC 10031은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이 고시하는 전기용품안전기준으로, 정식 명칭은 “사용후전지의 재사용을 위한 리튬이차전지의 안전 요구사항"이다. 근거는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이며, 재사용전지 관련 개정은 2022년 10월 18일 공포돼 2023년 10월 19일 시행됐다. KC 10031 자체도 같은 날짜인 2023년 10월 19일 국가기술표준원고시 제2023-445호로 제정됐다. 이 개정으로 법 제6장의2에 안전성검사대상전기용품이라는 항목이 신설되면서, 사용후 배터리를 다른 용도로 재사용하는 경로는 KC 62619의 안전인증·안전확인이 아니라 이 안전성검사 체계를 거치게 됐다.

도입 배경은 신품 기준과 사용후 배터리 사이의 간극이다. 사용후 배터리는 차량마다 주행 이력과 충방전 이력이 달라 개체마다 상태가 제각각인데, 신품을 전제로 한 형식시험·공장심사 체계로는 이 편차를 다루기 어렵다. 국가기술표준원은 2023년 4월 행정예고를 거쳐 이 제도를 구체화했고, 일정한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에 들어갔다.

검사 대상과 범위

KC 10031이 규율하는 대상은 두 단위다. 사용후전지를 재사용하기 위해 구성한 배터리 팩·모듈·셀(셀 블록)을 재사용전지모듈이라 하고, 이 재사용전지모듈 하나 이상을 묶어 구성한 것을 재사용전지시스템이라 한다. 기준은 사용후전지를 원래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다시 짜맞추는 과정 자체를 ‘재조립’이라는 용어로 정의해 규정한다.

적용범위에는 뚜렷한 제외 조건이 딸려 있다. 첫째, 사용후 배터리를 원래 용도인 자동차 구동용으로 되돌리는 경우는 대상에서 빠진다. 이는 앞선 글에서 짚었듯 KC 62619 자체가 자동차용 배터리를 적용범위에서 제외한 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 둘째, 제조상 결함으로 리콜된 배터리 중 리콜 사유가 해소되지 않은 배터리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셋째, 재사용전지시스템이 들어가는 최종 제품에 소방 관련 법령이 용도별 요구사항을 따로 두고 있다면, KC 10031과는 별개로 그 요구사항이 추가로 적용될 수 있다.

검사 항목과 절차

검사는 재사용전지모듈과 재사용전지시스템에 다른 무게로 걸린다. 재사용전지모듈은 사전검사 3항목(일련번호 부여·기록, 관련 정보, 외관검사)과 전기적검사 5항목(개방회로전압, 절연저항, 용량, 내부저항, 자가방전)을 전수로 받는다. 배터리 개체마다 이력이 다르다는 사용후 배터리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구조다.

재사용전지시스템 쪽은 기능안전성 검토를 받는다. 과충전 전압 제어, 과충전 전류 제어, 과열 제어를 시험하는 항목으로, 모델별로 1대를 검사한다. 이 항목은 KC 62619 8절의 배터리 시스템 기능 안전성 검토 체계를 그대로 인용해서 짜였고, 이를 수행하려면 검사기관이 KOLAS(한국인정기구) 공인을 받아야 한다. 신청 시에는 사업자등록증, 시험시료, 재사용전지모듈·시스템 사양서, 부품 리스트, 표시사항 등을 함께 제출한다.

검사는 국가기술표준원이 지정한 안전성검사기관에서 이뤄진다. 초기 지정 순서는 제주테크노파크(1호),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2호),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3호), 피엠그로우(4호) 순이었고, 2024년 3월에는 시스피아가 다섯 번째로 지정됐다. 이후로도 지정은 계속 늘어나는 항목이라, 현재 전체 목록은 국가기술표준원 공고를 통해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재사용 사업자 입장에서 걸리는 지점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전수검사 구조다. 재사용전지모듈의 사전검사·전기적검사는 샘플링이 아니라 개체마다 진행되므로, 사업자가 확보한 사용후 배터리 물량 전체가 검사 대상이 된다. 이는 개체별 이력 편차를 다루기 위한 설계지만, 그만큼 검사를 반복해야 하는 부담으로 돌아온다.

두 번째는 기능안전성 검토의 성격이다. KC 10031은 사용후 배터리를 KC 62619와는 다른 트랙으로 분리했지만, 정작 재사용전지시스템의 기능안전성을 판단하는 틀은 KC 62619 8절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신품 기준을 사용후 배터리에 직접 적용하지 않는다면서도, 그 판단 논리 자체는 신품 기준에서 빌려오는 구조인 셈이다. 이 항목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KOLAS 공인기관으로 한정된다는 점도 사업자가 검사기관을 고를 수 있는 폭을 좁힌다.

세 번째는 이력 추적 책임이다. 리콜 사유가 해소되지 않은 배터리는 애초에 검사 대상에서 빠지므로, 사업자는 확보한 사용후 배터리의 리콜 이력을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 최종 제품이 소방 관련 법령의 적용을 받는 용도라면 KC 10031 통과와는 별개로 추가 요건이 붙을 수 있어, 사업자 입장에서는 KC 10031 하나만으로 절차가 끝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ARC의 관찰

KC 10031은 신품 기준(KC 62619)이 사용후 배터리에 맞지 않는다는 문제를 별도 트랙 신설로 풀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신품 기준의 위험분석 틀을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다. 전수검사를 요구하는 부분은 사용후 배터리의 개체별 편차를 인정한 결과로 보이고, 기능안전성 검토를 KC 62619 8절에 기대는 부분은 아직 사용후 배터리만의 독자적인 안전 평가 체계가 자리잡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절충이 실제 재사용 사업의 속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검사기관 지정이 늘어나고 사례가 쌓인 뒤에 더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참고: [WTO TBT 통보문] “국가기술표준원공고 제2023-0114호, 전기용품 안전기준 KC 10031 제정(안) 행정예고” (2023.04.17) (https://members.wto.org/crnattachments/2023/TBT/KOR/23_8951_00_x.pdf)

참고: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재사용전지 안전성 검사제도, 전기용품 안전기준 KC 10031 안내서” (2024.01) (https://customer.ktl.re.kr/afile/fileDownload/qUWmn)

참고: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사용후 배터리 산업화 지원센터]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 운용요령 및 전기용품 안전기준(KC10031) 제개정 고시” (https://kbia-naju.or.kr/board.es?mid=a10702000000&bid=0002&act=view&list_no=4)

참고: [인더스트리뉴스] “재사용 배터리 안전성검사기관 4개 기관 확대…피엠그로우 제조기업 최초 지정” (https://www.industr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922)

참고: [머니투데이] “시스피아, ‘전기용품 안전성검사기관’ 신규 지정” (2024.03.07)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4030713011928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