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에 리튬이차전지를 넣으려는 사업자가 가장 먼저 마주치는 기준이 KC 62619다. 신품 산업용 리튬이차전지를 대상으로 설계된 이 기준은 사용후 배터리를 재사용하려는 사업자에게도 출발점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 적용해보면 신품을 전제로 짜인 조항들이 사용후 배터리의 상태와 잘 맞물리지 않는 지점이 나온다. 이 글은 KC 62619가 무엇을 규율하는 기준인지, 인증이 어떤 절차로 진행되는지 정리하고, 사용후 배터리에 적용할 때 실무에서 걸리는 지점을 짚는다. 사용후 배터리가 원래 용도로 복귀하는 재제조 쪽의 인증 경로는 다음 편에서 따로 다룬다.

적용 범위와 대상

KC 62619는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이 고시하는 전기용품안전기준 중 하나로, 정식 명칭은 “산업용 리튬이차전지 안전"이다. 국제표준 IEC 62619(비산성 또는 기타 알칼리 전해질을 포함하는 이차전지 — 산업용 리튬 이차 단전지 및 전지의 안전 요구사항)를 국내 실정에 맞게 들여온 기준으로, 2019년 10월 처음 고시된 뒤 2023년 3월 IEC 62619 Ed.2.0을 반영해 지금의 개정판(Ed 2.0)으로 갱신됐다.

적용범위는 개정을 거치며 넓어졌다. 최초 고시(Ed 1.0, 2019년)는 적용범위를 에너지저장장치용 리튬이차전지로 한정하고, 정격용량 300kWh 이하라는 상한만 뒀다. 2023년 개정판(Ed 2.0)은 여기에 이동형/정치형 에너지저장장치, 대용량 보조배터리(캠핑용 파워뱅크 등), 이동형 전기차 충전기를 적용 대상의 예시로 추가했고, 정격용량 500Wh 이상이라는 하한도 이때 새로 뒀다. 규율 대상은 셀(단전지) 단위와 이를 모아 구성한 전지(배터리) 단위 양쪽 모두다. 근거는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과 그 시행규칙이 정한 안전인증대상·안전확인대상 전기용품 목록이다.

다만 이 범위에는 제외 조항이 딸려 있다. 자동차·항공기·철도·선박용으로 쓰이는 배터리처럼 각각의 개별 법령에 따라 별도로 안전관리를 받는 배터리는 KC 62619의 적용범위에서 빠진다. 이 제외 조항은 뒤에서 사용후 배터리 문제를 다룰 때 다시 등장한다.

인증 절차: 셀과 시스템이 갈린다

KC 62619는 셀과 전지시스템에 같은 무게로 절차를 요구하지 않는다. 셀(단전지)은 안전인증 대상으로 분류돼 제품시험과 공장심사를 함께 통과해야 하고, 인증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공장심사와 제품시험을 반복하는 사후관리를 받는다. 반면 모듈·팩·배터리관리시스템(BMS)까지 포함한 전지시스템은 안전확인 대상으로 분류돼, 지정된 시험기관에서 제품시험을 통과한 뒤 그 결과를 신고하면 된다. 공장심사와 정기검사는 이 단계에서는 요구되지 않는다. 셀 쪽은 생산 공정 자체를 검증받는 무거운 절차를, 시스템 쪽은 완성품의 시험 결과를 확인받는 절차를 거치는 구조다.

사용후 배터리에 적용할 때 걸리는 지점

KC 62619의 형식시험은 신품 셀·시스템을 시료로 삼는다는 전제로 설계돼 있다. 정격용량, 내부저항, 자가방전 허용폭 같은 판정 기준점이 제조 직후의 스펙을 기준으로 잡혀 있어서, 이미 충방전을 반복해 용량이 줄고 셀 간 편차가 벌어진 사용후 배터리에 같은 기준점을 그대로 대입하기가 애매하다. 셀 하나하나가 “신품"이라는 전제 자체가 사용후 배터리에는 성립하지 않는다.

공장심사 절차도 마찬가지다. 안전인증은 제조자가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체 공정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그 공정이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는지를 심사한다. 그런데 사용후 배터리를 재구성해 다른 용도로 넣는 사업자는 대개 셀을 새로 설계·생산하는 쪽이 아니라, 전기차 제조사가 만든 셀·모듈을 그대로 가져와 다시 조립하는 쪽이다. 원래 셀을 설계한 곳과 이를 재구성하는 곳이 분리되는 구조이다 보니, 재구성 사업자가 셀 설계 단계의 정보를 온전히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흔하고, 이는 신품 제조자를 전제로 짜인 공장심사 항목과 잘 맞물리지 않는다.

정부도 이 간극을 제도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사용전지 관련 규정을 담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개정은 2022년 10월 18일 공포돼 2023년 10월 19일부터 시행됐고, 이때 제6장의2에 안전성검사대상전기용품이라는 항목이 신설됐다. 사용후 배터리를 원래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재사용할 때는 KC 62619의 안전인증·안전확인 체계가 아니라 바로 이 안전성검사 체계를 거친다. 세부 기준은 KC 10031이며, 정식 명칭은 “사용후전지의 재사용을 위한 리튬이차전지의 안전 요구사항"이다. 이 기준은 사용후 배터리를 다른 용도로 조립하는 것을 ‘재조립’이라는 용어로 정의하고, 사용후 배터리 모듈과 이를 재조립한 시스템을 각각 별도의 검사 항목으로 규율한다.

이 별도 트랙은 앞서 짚은 적용범위의 제외 조항과 맞닿아 있다. KC 62619는 애초에 자동차 등 개별 법령으로 안전관리되는 배터리를 적용범위에서 빼놓았으므로, 사용후 배터리가 원래 용도인 자동차 구동용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는 처음부터 이 기준이 다루는 대상이 아니다. 반면 ESS 등 다른 용도로의 재사용은 이 제외 조항에 걸리지 않아 KC 62619 체계 안에 있을 법도 하지만, 앞서 짚은 형식시험·공장심사의 신품 전제 때문에 실제로는 KC 62619가 아니라 KC 10031이 별도로 받는다. 신품 기준 하나로 사용후 배터리까지 포괄하지 않고 별도 트랙을 따로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KC 62619를 사용후 배터리에 곧바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ARC의 관찰

KC 62619가 사용후 배터리 재사용 사업의 걸림돌처럼 보이는 것은 이 기준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애초에 신품 산업용 전지를 규율하도록 설계된 기준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용후 배터리 쪽에 안전성검사(KC 10031)라는 별도 체계가 마련돼 있다는 것은 이 구분이 제도적으로도 인식됐다는 뜻이다. 다만 두 체계의 판정 항목과 시험 방법이 실제로 얼마나 정합적으로 맞물리는지, 재사용 사업자 입장에서 어느 기준을 적용받아야 하는지 판단하는 경계가 실무에서 얼마나 명확한지는 이 글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참고: [국가기술표준원] “전기용품안전기준 KC 62619 산업용 리튬이차전지 안전” (https://www.kats.go.kr/cwsboard/board.do?mode=download&bid=155&cid=21073&filename=21073_201910251526580981.pdf)

참고: [국가법령정보센터] 행정규칙 “전기용품 안전기준(KC 62619)” (https://www.law.go.kr/LSW/admRulLsInfoP.do?admRulSeq=2100000220898)

참고: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전기용품 안전기준 개정 고시(KC 62619 Ed 2.0)” (https://customer.ktl.re.kr/web/contents/K501000000.do?schM=view&id=45048)

참고: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재사용전지 안전성 검사제도, 전기용품 안전기준 KC 10031 안내서” (2024.01) (https://customer.ktl.re.kr/afile/fileDownload/qUWmn)

참고: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에너지저장장치시험” 안내 (https://customer.ktl.re.kr/web/contents/K102130200.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