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 배터리로 사업을 구상하는 쪽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어려움은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보가 서로 다른 법과 부처 아래 흩어져 있어 무엇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물량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그 물량으로 어떤 용도를 노릴 수 있는지, 그 용도가 어떤 인증을 요구하는지, 그 인증이 어떤 설비와 이력 관리를 요구하는지, 사업자로서 갖춰야 할 등록과 보험은 무엇인지가 하나의 절차가 아니라 여러 법에 나뉘어 있다. 이 블로그는 사용후 배터리 활용처 판별 기준, KC 62619 인증 개요, KC 10031 재사용전지 안전성검사 세 편으로 각 단계를 따로 다뤘다. 이 글은 그 세 편을 검토 순서에 맞춰 하나로 잇는다. 앞 단계의 답이 다음 단계의 갈림길을 정하는 흐름을 따라간다.

1. 물량: 어디서, 어떤 상태로 확보하는가

지금 이 물음에 대한 공식 답은 없다. 사용후 배터리의 관리 및 산업육성에 관한 법률이 2026년 5월 26일 공포돼 2027년 5월 27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데, 이 법은 사업자를 유통·재제조·재사용·재활용 네 유형으로 나누고 산업통상자원부장관에게 등록하도록 규정한다. 유통사업자라는 공식 채널이 법적으로 자리잡는 시점이 2027년 5월이라는 뜻이므로, 그 전까지는 완성차사의 정비·리콜 네트워크, 폐차장(자동차관리법상 자동차해체재활용업), 렌터카·보험사 등과 개별 계약으로 물량을 확보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경로다.

이 단계에서 놓치면 안 되는 것은 물량의 상태다. 확보하려는 배터리에 침수·화재·변형·파손이 있는지, 셀이 훼손돼 유해물질 유출이나 화재·폭발 위험이 있는지는 뒤에서 폐기물 관련 인허가가 필요한지를 가르는 기준이 되므로, 사업 계획 초기에 물량 공급처와 확인해두어야 나중에 되돌아가는 일이 없다. 물량 자체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쌓이는지는 활용처 판별 기준 글에서 짚었듯 정부 전망과 실제 배출량 사이에 이미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는 점도 감안할 부분이다.

2. 용도: 확보한 물량이 어디로 갈 수 있는가

물량의 상태는 성능평가 결과로 이어진다. 정부가 준비 중인 탈거 전 성능평가 체계는 잔존성능·안전성·이력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고, 이 등급에 따라 상위 등급은 원래 용도로 되돌리는 재제조로, 중간 등급은 ESS 등 다른 용도로 돌리는 재사용으로, 하위 등급은 금속을 추출하는 재활용으로 갈리는 구조로 설계되고 있다. 다만 이 성능평가의 구체적인 대상 제품 범위는 아직 대통령령에 위임돼 확정되지 않았다.

같은 등급 안에서도 재사용 쪽으로 갈 배터리라면, 어떤 용도가 적합한지는 활용처 판별 기준 글에서 정리한 세 가지 질문—순간 고출력이 필요한가, 지속 모니터링이 가능한 고정 환경인가, 팩·모듈 단위 재구성이 가능한가—을 통과하는지로 좁혀진다. 이 답에 따라 사업이 어느 인증 트랙에 들어갈지가 정해진다.

3. 인증: 용도가 정하는 트랙

용도가 원래 용도로의 복귀(재제조)라면 KC 62619와 KC 10031 어느 쪽도 적용되지 않는다. 두 기준 모두 자동차 구동 시스템으로 재사용되는 배터리를 적용범위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이 경로는 전기용품 계열이 아니라 자동차관리법 계열의 별도 체계를 따른다. 2026년 2월 27일 공포된 자동차관리법 개정(법률 제21412호)은 사용후배터리와 재제조배터리의 정의를 신설하고, 배터리를 분리하기 전 국토교통부장관이 실시하는 성능평가제도를 도입했으며, 사용후 배터리를 재제조 배터리로 제작·조립하려는 자에게 부품제작자 등록 의무를, 재제조 배터리가 장착된 전기자동차 등에는 유통 전 안전검사를 각각 부과했다. 시행일은 2027년 7월 1일이다. 등록·검사의 구체적인 요건은 아직 이 블로그에서 확인해 정리하지 못했으며,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용도가 다른 용도로의 전환(재사용, 예를 들어 ESS)이라면 KC 62619 글과 KC 10031 글에서 짚었듯, 신품 전제로 설계된 KC 62619가 아니라 별도로 마련된 안전성검사 체계, KC 10031을 거친다.

용도가 분해해 금속을 추출하는 재활용이라면 애초에 이 인증 체계 바깥에 있다. 폐기물관리법에 따른 폐기물처리업(재활용업) 허가 대상이며, 처리 방식에 따라서는 아직 법적 기준이 없어 실증특례를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4. 트랙 안의 설비·검사·이력 관리

재사용 트랙(KC 10031)에 들어가면 요구되는 것은 크게 두 갈래다. 재사용전지모듈은 사전검사 3항목과 전기적검사 5항목을 개체마다 전수로 받고, 재사용전지시스템은 KC 62619 8절의 기능안전성 검토 체계를 인용한 시험을 모델별로 받는다. 검사는 국가기술표준원이 지정한 안전성검사기관에서 이뤄지는데, 지정 기관 수는 계속 늘어나는 항목이라 현재 목록은 국가기술표준원 공고를 통해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대부분의 재사용사업자에게 필요한 설비는 검사 설비가 아니라 배터리를 재구성·보관하는 설비다. 사전검사 항목에 일련번호 부여·기록이 포함돼 있어, 개체별 이력을 추적하는 관리 체계도 이 단계에서 함께 준비해야 한다. 검사 항목과 절차는 KC 10031 글에서 다뤘다. 검사를 외부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안전성검사기관이 되려는 경우—피엠그로우처럼 제조업체가 검사기관을 겸하는 사례가 실제로 있다—라면 요구되는 것이 하나 더 늘어나며, 다음 단계에서 이어진다.

5. 진입 요건: 등록, 책임보험·공제, 폐기물 인허가

사업자등록은 가장 기본적인 전제다. KC 10031 검사를 신청할 때도 사업자등록증 제출이 요구된다. 여기에 더해 신설된 사용후 배터리법은 2027년 5월 27일부터 재사용사업자 스스로 산업통상자원부장관에게 등록하도록 규정하는데, 등록에 필요한 시설·인력 기준은 아직 대통령령에 위임된 채 확정되지 않았다. 미등록 상태로 영업하거나 미등록 사업자와 거래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는 조항은 법률에 마련돼 있다.

책임보험은 두 갈래로 나눠 봐야 한다. 안전성검사기관 자신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제34조의9(배상책임)에 따라 부실 검사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지며, 지정 심사 과정에서 책임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받는다. 이는 검사를 외부에 맡기는 대부분의 재사용사업자에게는 직접 해당하지 않고, 스스로 안전성검사기관이 되려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반면 신설 사용후 배터리법은 재사용사업자 자신에게 소비자 피해를 담보하기 위한 공제 또는 보험 가입 의무를 부과한다. 다만 이 의무 역시 법 시행일인 2027년 5월 27일 이후에 적용된다.

폐기물 인허가 여부는 1단계에서 확인한 물량 상태로 되돌아간다.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에 따라 환경부가 고시로 지정한 순환자원 목록에는 전기자동차 폐배터리가 포함돼 있다. 침수·화재·변형·파손이 없고 셀 손상에 따른 유해물질 유출이나 화재·폭발 위험이 없는 배터리를, 순환이용의 용도·방법·기준을 지키며 원래 용도나 다른 용도로 재사용하는 경우에는 폐기물로 보지 않는다. 이 범위 안에 있다면 폐기물처리업 허가 없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반대로 이 조건을 벗어나는 배터리를 다루거나, 애초에 분해해 금속을 추출하는 재활용을 목적으로 한다면 폐기물관리법 제25조에 따른 폐기물처리업 허가 대상이 된다.

ARC의 관찰

이 전체 그림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각 단계가 서로 다른 부처의 서로 다른 법에서 나오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량과 폐기물 여부는 환경부 소관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인증은 국가기술표준원이 고시하는 전기용품안전기준, 사업자 등록과 산업 육성은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의 신설법이 각각 규율한다. 신설법은 공포됐지만 등록 기준과 성능평가 대상처럼 실무를 좌우할 세부 사항은 여전히 하위법령에 남아 있어, 그 내용이 어떻게 채워지는지 지켜보는 것도 사업 검토의 일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 [ZDNet Korea] “‘사용후배터리법’ 국무회의 의결…“국가 전략자원으로 관리”” (https://zdnet.co.kr/view/?no=20260520090026)

참고: [법무법인 지평] “[기후에너지센터]「사용후 배터리의 관리 및 산업육성에 관한 법률안」의 주요 내용 및 시사점” (https://www.jipyong.com/kr/board/news_view.php?seq=15114)

참고: [국가법령정보센터] 자동차관리법 개정이유(법률 제21412호, 2026.2.27. 공포, 2027.7.1. 시행 — 사용후배터리·재제조배터리 정의, 성능평가제도, 부품제작자 등록, 유통 전 안전검사 신설) (https://law.go.kr/LSW/lsRvsRsnListP.do?lsId=001747&chrClsCd=010102&lsRvsGubun=all)

참고: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배터리 재활용 관련 규제사항 체크리스트” (2025.8) (https://www.innopolis.or.kr/fileDownload?titleId=182135&fileId=1&fileDownType=C¶mMenuId=MENU00403)

참고: [신킴(Shin & Kim)] “전기차 폐배터리 등 7개 품목이 ‘순환자원’으로 지정되어 폐기물 규제가 면제됩니다” (https://www.shinkim.com/kor/media/newsletter/2262)

참고: [국가법령정보센터] 행정규칙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에 의한 안전인증기관등 지정 및 심사 가이드” (제34조의9 배상책임 관련) (https://lbox.kr/v2/statute-admin/%EC%A0%84%EA%B8%B0%EC%9A%A9%ED%92%88%EB%B0%8F%EC%83%9D%ED%99%9C%EC%9A%A9%ED%92%88%EC%95%88%EC%A0%84%EA%B4%80%EB%A6%AC%EB%B2%95%EC%97%90%EC%9D%98%ED%95%9C%EC%95%88%EC%A0%84%EC%9D%B8%EC%A6%9D%EA%B8%B0%EA%B4%80%EB%93%B1%EC%A7%80%EC%A0%95%EB%B0%8F%EC%8B%AC%EC%82%AC%EA%B0%80%EC%9D%B4%EB%93%9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