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0일 하루에 사용후 배터리 ESS 소식이 국내외에서 나란히 나왔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기아를 포함한 5개사가 전기차에서 떼어낸 배터리팩으로 200kWh급 ESS를 꾸려 실증에 들어간다고 발표했고, 같은 날 영국 매체 Energy Storage News는 해외 재사용 ESS 업체 세 곳의 진전을 한 기사로 묶어 전했다.

네 건을 나란히 놓으면 먼저 보이는 것은 기술 수준의 우열이 아니다. 각자 서 있는 단계가 다르고, 그 단계에서 택한 사업 구조가 다르다.

국내: 급속충전기에 붙인 200kWh 실증

발표에 담긴 내용은 이렇다. 현대자동차·기아·LG에너지솔루션·현대엔지니어링·원익피앤이 5개사가 9월 10일 경기 화성시 원익피앤이 동탄 사업장에서 실증 협력 기념행사를 열었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차량에서 나온 사용후 배터리팩으로 200kWh급 UBESS(Used Battery Energy Storage System)를 구성해 전기차 급속충전기와 연계하고, 전기요금이 낮은 시간대에 저장한 전력을 요금이 높은 시간대의 급속충전에 쓰는 구조다. LG에너지솔루션이 UBESS 제작과 배터리 진단·운영 기술을, 현대엔지니어링이 사업성 검토와 충전 인프라 연계성 평가를 맡는다.

발표된 것과 확인된 것은 구분해 둘 필요가 있다. 이 소식의 원천은 보도자료이고 국내 다수 매체의 기사도 같은 자료에서 나왔다. 참여사와 장소, 용량, 배터리 출처, 운영 구조는 보도자료에서 확인 가능한 발표 내용이다. 반면 참여사들이 제시한 검증 항목 — 충방전 제어 알고리즘, 시스템 안전성·신뢰성, 배터리 성능 유지 특성, 충전 서비스 품질과 운영 효율성 — 은 앞으로 확인하겠다는 계획이지 이미 나온 결과가 아니다. KPI뉴스는 투입된 배터리의 확보 경로와 사용 기간, 잔존용량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다. 재사용에서 결과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변수, 곧 어떤 상태의 배터리를 어떤 기준으로 선별했는가가 아직 공개 정보 밖에 있다는 뜻이다. 용도 자체는 활용처 판별 기준에서 정리한 세 가지 질문 — 순간 고출력을 요구하는가, 상시 감시가 가능한 고정 환경인가, 팩·모듈 단위 재구성이 가능한가 — 과 어긋나지 않는 구성이다.

해외 3사: 상업운전, 규제 적합성, 자금 조달

Energy Storage News가 묶은 세 곳은 서로 다른 관문을 통과하는 중이다.

B2U Storage Solutions — 상업운전 단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인근 Bexar Martinez 프로젝트가 28MWh 규모로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전력회사 CPS Energy의 공급구역 안에 연계됐고, 자체 특허를 적용한 재사용 배터리 ESS 캐비닛을 쓴 텍사스 내 두 번째 현장이다. 제3자 금융 조달을 마쳤으며, 이 회사 기술을 쓴 프로젝트는 투자세액공제(ITC)의 국내산 부품 보너스 요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의 Cuyama와 Sierra도 운영 사례로 함께 제시됐다.

Moment Energy — 규제 적합성 검증 단계. 캐나다 밴쿠버에 제조 거점을 둔 이 회사는 미국 대형 로펌의 제3자 검토를 거쳐, 미국 세제상 금지외국법인(prohibited foreign entity)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과 FEOC 규정 준수를 확인받았다고 밝혔다. 검토 범위에 법인 소유구조와 실질 지배, 부채 조달 구조가 포함됐다. 제품은 400kWh/1MWh 시스템으로 소개된 Luna BESS이며 10MWh까지 확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26년 5월 시리즈B로 4,000만 달러를 확보했다.

Rebaba — 자금 조달과 제조 확장 단계. 스웨덴 업체로, 초과 청약된 시드 라운드에서 4,410만 스웨덴 크로나(약 460만 달러)를 유치했다. 벤처캐피털 Sistafund가 주도하고 범유럽 이니셔티브 EIT Urban Mobility가 참여했다. 스톡홀름 CircularHub에서 1년간 생산해 스웨덴에서 상업 물량을 운영 중이고, 스웨덴·덴마크에서 새로 맺은 계약을 포함해 생산 능력을 연 40MWh로 늘릴 계획이다.

세 건을 묶어 “해외는 이미 상업화 단계"로 읽으면 단계가 지워진다. 상업운전 도달, 규제 적합성 확보, 자금 조달은 서로를 갈음하지 않는 별개의 관문이다.

사업 구조를 가르는 것

여기서부터는 해석이다. B2U 발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제도가 조달 구조 안에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반면 이 프로젝트가 전력시장에서 어떤 수익을 내는지는 원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 확인되는 것은 세액공제 보너스 요건 해당과 제3자 금융 조달, 프로젝트 인수 사실이 상업운전과 나란히 제시됐다는 점까지다.

국내 실증은 전력 판매가 아니라 충전소 연계로 설계됐다. 전력시장 거래보다 충전 서비스 운영 쪽에서 수익을 찾는 구조로 읽을 수 있다. 이 선택은 기술 수준보다 제도와 시장 조건에서 비롯됐을 여지가 있다. 국내에서 재사용 배터리 ESS가 전력시장에 참여해 수익을 내는 경로가 아직 넓다고 보기는 어렵고, 그에 비해 충전 사업은 요금 시간대 차이라는 가격 신호가 분명하고 정산 구조도 단순하다. 다만 이는 구조를 놓고 읽은 해석이지 참여사들이 밝힌 이유가 아니며, 미국의 세액공제 구조가 국내에 그대로 옮겨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같은 기술이 다른 제도 위에 놓이면 다른 사업 구조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정도까지가 이번 네 건에서 읽어낼 수 있는 선이다.

같은 주, 서울시의회의 조례 개정

9월 14일에는 서울시의회가 제339회 임시회에서 「서울특별시 전기자동차 사용 후 배터리 산업 육성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통과시켰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용후 배터리를 폐기물이 아니라 재사용·재제조·재활용이 가능한 순환자원으로 규정하고, 안전관리와 성능평가 지원을 시의 지원사업에 새로 넣는 내용이다. 다만 조례가 만드는 것은 지원과 예산의 근거이지 인증 요건 자체가 아니다. 재사용 배터리로 ESS를 만들려는 사업자가 통과해야 할 검사와 설치 기준은 여전히 상위 법령에 달려 있으며, 그 층위는 KC 62619·KC 10031과 KS C IEC 62933의 관계에서 정리했다.

ARC의 관찰

네 건 모두에서 공개되지 않은 항목이 겹친다. 재사용 팩으로 만든 ESS의 kWh당 설치 원가가 신품 대비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재사용 이후 몇 년을 더 쓸 수 있는지, 이력이 제각각인 셀을 한 시스템에 묶었을 때 열폭주 전이 특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차종과 팩마다 다른 구조를 하나의 제품 라인으로 묶는 데 설계·검사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경제성, 잔존수명, 화재 안전, 표준화 비용 네 가지 모두 어느 발표에서도 숫자로 나오지 않았고, 공개되지 않았거나 검증이 남은 항목이다. 지금 확인되는 것은 각자가 자기 제도와 시장 조건에 맞는 구조를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지켜볼 지점은 실증이 시작됐다는 사실보다 네 가지 중 무엇이 먼저 숫자로 공개되는가다.

관련 글: 사용후 배터리 활용처, ESS로 쏠리는 이유와 판별 기준, KC 62619·KC 10031과 KS C IEC 62933의 관계

참고: [Energy Storage News] “Second-life BESS firms B2U, Moment and Rebaba advance project operations, US compliance, and new financing” (2026.9.10) (https://www.energy-storage.news/second-life-bess-firms-b2u-moment-and-rebaba-advance-project-operations-us-compliance-and-new-financing/)

참고: [뉴스1] “현대차그룹, LG엔솔·원익피앤이와 EV 폐배터리 ESS로 재활용 실증” (2026.9.10) (https://www.news1.kr/industry/auto-industry/6286227)

참고: [KPI뉴스] “폐차할 때도 안 됐는데…아이오닉·EV6 배터리가 ESS로 간 까닭” (2026.9.11) (https://www.kpinews.kr/newsView/1065600219800991)

참고: [국제뉴스] “김광철 시의원,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위한 조례안 서울시의회 통과” (2026.9.14) (https://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95074)